이용후기

7코스 (어천 - 운리)

작성자
보헤미안
작성일
2012-09-25 09:15
조회
23198

 


지리산 둘레길 7코스 (어천 운리간)


 


성심원에서 가까운 곳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몇 번 쉬다 보니 어천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웅석봉으로 가는 길로 향한다. 끝없이 올라가는 길, 고지가 높아져 가는지 건너편에 보이는 산의 높이가 내 눈 앞에 수평으로 펼쳐 진다. 지루하게 임도와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비포장 도로도 모두 작은 돌들이 깔려 있어 등산화를 신었는데도 발바닥에 무리가 간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최근의 태풍에 피해 입은 나무들이 자주 보여 안타깝다. 심하게 무너진 곳도 있고 조금이라도 땅이 흔들리거나 큰 비가 한 번 더 오면 즉시 산사태가 날 것 같은 곳도 보인다. 커다란 나무는 뿌리째 뽑혀 있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중간이 부러져 있으며, 산길도 흙들이 모두 쓸려 내려가 날카로운 바위 돌들이 지표면을 가득 덮고 있다.


 


올라가는 길에 웅석사라는 작은 절 같지 않은 암자 하나. 설마 정상에 다 온 것은 아니겠지. 절 입구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바위 세 개로 대문을 대신했다.  지루할 정도의 임도가 계속되면서 쉬는 빈도가 잦아 진다.


 


길이 넓으니 여기까지 차가 돌아 올 수 있었는지 작은 콘테이너 건물도 하나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길이 끊어지고 계곡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아무리 힘들지만 투명한 계곡물을 보니 기분이 좋다. 어쩌면 이렇게 이끼 하나도 보이지 않을까? 계곡물의 바닥에 깔린 자갈돌이 마치 거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깨끗해 보인다. 물이 세차게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산 기슭의 나무 뿌리 사이에서도 졸졸졸 샘물이 흐르고 있다


 


나무들도 모두 계곡 쪽으로 앞으로 나란히 하듯이 가지를 뻗고 있다. 산으로 높이 올라오니 기이한 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나무들의 밑둥이 산불에 의해 검게 그을려져 있다. 그래도 나무의 생명력은 질기기만 하다. 밑둥은 불에 타서 그을음이 가득한데도 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이제 더 이상 평탄한 길은 없다. 깍아지른 듯한 비탈길이 내게 덤벼봐라 하고 말을 건다. 그래..올라가 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내 비록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못하고 음식에 대한 탐심으로 배가 많이 나와 몸이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갈 곳은 다 간다.


 


길이길이..세상에 얼마나 가파른지, 거의 3미터마다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본격적으로 물이 필요하다.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완만한 경사면 좋으련만 거의 일직선으로 올라 갈 길을 종이 접듯이 조금 좁게 접어 놓았을 뿐이다. 올라가면서 평평한 돌만 보이면 주저 앉았고 기댈 나무만 있으면 기대어 쉬었다. 시간 상으로 1시간 반을 올라왔던가? 그래도 아직 멀었겠지? 하염없이 앉아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산에서 내려온다. 얼마나 올라가야 하느냐고 물어 보니 위를 한 번 쳐다 보더니 내가 올라온 만큼 올라가야 한단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피할 수도 없는 길. 거의 10미터 올라가다가 쉬고, 배낭 안의 물과 주스도 아껴서 마시고 있다. 군데 군데 나쁜 사람들이 버린 구겨진 담배갑도 보고 어느 나무엔 나무 한 가운데를 담뱃불로 지진 흔적도 보인다. 무슨 심뽀였을까?


 


산길을 올라가는데 문득 팻말 하나가 반갑다. 비상사태를 위한 표시석. 055-119 전화번호와 8이라고 써 있는데 무슨 뜻일까? 8부능선?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또 다른 팻말에는 9라고 써 있어 아마 능선 수를 표시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가끔 누군가가 시작한 돌탑이 조금씩 높이 쌓여지고 있는 것을 보며 그렇게 길을 힘들게 올라가는데 문득 발로 딛는 바위들이 사람 손을 거친 것이 보인다. ! 이건 분명히 정상이 가까운 것 일거야. 이제까지 올라온 길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이었는데 지금부터는 비록 흔한 바위이지만 발을 딛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조금만 올라가면 될거야.


 


최근에 검색한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 코스를 어린 딸과 함께 올라간 부부가 있는데 그 글을 읽을 때마다 감탄했다. 어찌 그렇게 딸이 즐거운 얼굴로 잘 올라가는지그런데 그 여자 아이가 이 곳도 지나쳤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블로그에 보면 올라가다 숲 사이로 하늘이 보일 때 쯤이면 다 온 것이라고 얘기해 나도 수시로 하늘을 보았지만 파란 하늘은 요원하다가 어느 순간 지그 재그로 걷던 길이 경사가 완만해 지며 멀리 하늘이 보인다. 이제 다 왔구나


 


시간을 보니 2시간 반이 거의 다 되어 간다. 내가 체력이 부족하긴 하네. 비스듬한 길을 힘차게 걸어 올라가니 제일 먼저 차가 보인다. 이 꼭대기에 무슨 차가 있을까? 아마 웅석봉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임도가 있는 것 같다. 헬기장에는 턱수염이 수북한 어떤 나이 드신 이가 점심을 먹고 있다가 다 드셨는지 가방을 싸고 있다. 헬기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이 곳이란다.


 


아저씨는 어린 애 키만큼이나 커다랗고 낡은 배낭에 먹고 난 그릇들을 챙기고 종이를 꺼내 몇 시에 점심을 먹었는지 기록하는데 그 옆에 나침반과 헤드랜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산꾼같다. 나중에 민박집에서 이 곳이 백두대간 코스의 시작점이라 알려 준다.


 


백두대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꾸어 보는 백두대간 종주. 친구 중 한 명도 이 곳을 종주하고 난 뒤에 날씬한 몸을 자랑한 적도 있다 그 뒤에 다시 살이 찌긴 했지만


 


그 분에게 내 사진 하나 찍어 달라고 하고 비록 다리에 힘이 풀리긴 했지만 나도 내려 갈 길이 한참 멀고 산에서는 어둠이 빨리 오니 서둘러야 한다. 나는 임도를 따라 운리 쪽으로 가는데 조금 가다 보니 숲 속으로 올라갔던 그 산꾼의 얼굴이 보이더니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고 나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고생은 내려가는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 거리상으로는 다음 이정표인 점촌마을까지 6Km를 내려 가야 한다. 이 것도 내려가는 길이라면 만만치 않은 거리다. 내려가는 것은 무게 중심으로 자꾸 밑으로 쏠리기에 발의 피로가 쉽게 와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고 심하면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된다.


 


언덕을 내려가는 양 옆의 어떤 나무들에는 밑에 노란 비닐테이프를 둘러 놓았다. 왜 그랬을까? 병충해 방지를 위해 둘러 놓았을까? 아니면 혹시 불탄 나무들인가? 그리고 흰 비닐로 덮어 놓은 베어놓은 나무들 무더기가 보인다. 이제까지 많은 곳을 다녀 보았지만 한 번도 베어 놓은 나무를 이렇게 비닐로 덮은 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곳에 계곡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져 있고, 커다란 돌들이 길가에 굴러 내려왔다.


 


그러다가 문득 길 한가운데 작은 나뭇가지가 머리만한 돌에 연이어 깔려 있다. 문득 이게 혹시 간첩의 포스트가 아닐까 하는 엉터리 호기심이 생겨 카메라를 들이댔다. 또 다른 이상한 점. 언덕길 왼쪽이 노란 안전복을 입은 사람과 건장한 남자와 여자 등 몇 명의 무리가 작은 비닐 화분에 잔디같이 생긴 풀을 하나씩 담아 종이 박스에 담는다. 가까이 다가가 이게 무어냐고 물어보는데 생소한 단어라 이름을 잊어 버렸지만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이 것을 여기서 재배하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 종이 박스에 경기화학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왜 이런 박스를 쓰는 걸까? 혹시 대마초 같은 것을 위장 포장하는게 아닐까? 혹시 내가 내려가면 나를 쫒아와 사건현장을 보았다고 증인을 해치진 않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드가 CSI 걸랑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데 뒤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소리없이 내려오고 있다. 혹시??


차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기에 안심하고 길을 내려가는데 문득 길이 커다란 바이케이트로 막혀 있다. ? 이 곳은 개인 땅이구나. 그래서 조금 전에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었구나.


 


바이케이트를 옆으로 우회하여 앞에 가서 보니 자물쇠가 이제 막 사용했는지 달랑거리고 있다. 승용차가 방금 지나간 흔적이다. 이런 바리케이트가 조금 더 가니 한 개가 더 보였다. 아마 다른 갈림길이 있었는데 산의 주인이 다른 것 같다.


 


내려가는 것도 계속 세멘트 도로와 돌길들이 연이어져 발 바닥에 불이 나는 것 같다. 혹시라도 너무 심하게 걸으면 발에 물집이라도 잡힐 것 같다. 가끔 계곡 저 편에 보이는 높은 산의 높이가 지금 내 눈 높이와 같아 보인다.  


 


문득 세멘트 도로에 이상한 자국이 보인다. 포장을 해 놓았는데 세멘트가 굳기 전에 커다란 동물이 미리 강도테스틀 했는지 발자국이 선명하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 길 옆에 잘 만들어진 목조가옥과 호수가 보이고, 이정표가 다음 목적지를알려 준다.. 여기까지 점촌마을이다. 1시간 반 정도 내려 온 것 같다. 날씨가 흐린 건가 아니면 어둠이 오는 건가?  배도 고프고 온 몸이 기진맥진하다. 탑동으로 내려가며 오늘 묵을 숙소에 전화를 걸었다. 탑동에서 운리까지 멀지 않은 거리지만 내일은 새로운 출발이니 몇 백 미터쯤 더 걷는다고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아 탑동에서 나를 픽업해 달라 부탁했다.


 


빨간 흙 더미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소나무들이 눈길을 끌고, 길 가에 절이 있지만 너무 힘들어 올라가 기도 싫을 때 쯤 돌담에 이끼가 가득한 마을 골목을 지나가니 어느 집 옆에 키가 그리 높지 않은 매화나무에 나무 울타리를 쳐 놓았다. 설명에 의하면 630년 전에 이름이 생소한 어느 유명한 분이 심어 놓은 것이고 경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한다.


 


마을의 커다란 공터에 삼층석탑이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래서 탑동이구나. 통일신라시대의 쌍탑이라하는데 탑은 거의 새로 만든 탑같이 돌에 이끼조차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탑 옆의 정자에서 민박 집 주인을 만나기로 되어 있기에 배낭 내려 놓고 신발 끈 느슨하게 다시 매고 기다리고 있는데 탑 앞의 민박집에서 나이 지긋한 도시풍의 어른 두 명이 탑 건너편에서 말을 건다. 내일 자기들도 8코스를 걸을 것이라기에 기왕 갈거면 같이 가자 한다. 그러마 하고 혹시 9코스까지 갈 것이라면 내가 추천하는 위태지역의 민박집에 가라고 권해 주고 조금 있으니 민박집에서 나를 데리러 왔기에 차를 타고 찾아 간 민박집이 여느 민박집과는 사뭇 다르다.


 


어제 밤의 볼품없었던 민박집하고는 완전히 극과 극이다. 청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흙속에 바람속에라는 민박집의 모습을 이미 인터넷으로 보고 왔기에 대충 그런 모습이려니 생각은 했는데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의 모습까지 얼마나 정감이 넘치던지그 많은 소품들과 인테리어들, 마당의 귀퉁이에 놓인 소도구까지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집의 구석 구석을 모두 사진찍어 왔다.


 


부인이 천연염색을 하고 있어 마당에는 감으로 염색한 넓은 천이 빨래줄에 널려 있는데 어느 중국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오늘 이 민박집의 손님은 나 혼자 뿐이라 나보다 나이가 많은 민박 집 주인과 저녁을 마당에서 겸상했다. 정갈한 시골 반찬. 직접 산채로 만든 반찬과 구수한 된장국. 미리 주인아저씨가 미리 양해를 구한다. 자기들은 이렇게 산나물만 주식으로 먹는다기에 나도 이런 것이 좋다라며 맞장구쳐준다. 이런 것이 바로 시골민박의 좋은 점 아닌가?


 


어차피 나 혼자인 공간. 밤 늦게까지 마당에서 반달과 초생달의 중간쯤 되는 달이 어둔 산을 넘어가고 온 천지에 가득한 별을 보며 혼자 기억 속에 있는 노래를 오랫동안 신나게 부르고는 주인이 직접 만든 듯한 누비이불과 박을 이용해 만든 아늑한 조명등 불빛 속에서 지리산의 두 번째 밤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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